혹시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한 적 없으신가요?
분명 원작에서는 아시아인이었던 캐릭터가 어느새 백인 배우로 바뀌어 있다거나, 역사적 인물의 인종이 슬쩍 바뀌어 있는 경우 말입니다.
어딘가 찜찜한데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했다면, 오늘 제대로 된 지식을 충전해 가실 시간입니다.
바로 화이트워싱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샅샅이 파헤쳐 볼 예정이거든요.
이 글에서는 화이트워싱의 정확한 뜻과 유래부터, 왜 이렇게 뜨거운 감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대표적인 사례들이 있었는지 속 시원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화이트워싱(Whitewashing), 정확히 무슨 뜻일까요?
화이트워싱(Whitewashing)이란, 본래 유색인종이었던 캐릭터나 실존 인물을 미디어(영화, 드라마, 연극 등)에서 백인 배우가 연기하도록 각색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말 그대로 하얀색(White)으로 씻어낸다(wash)는 뜻이죠.
원래 있던 캐릭터의 인종적 정체성을 지우고 백인이라는 설정으로 덧칠해버리는, 어찌 보면 상당히 직설적인 표현입니다.
페인트칠 한 번으로 캐릭터의 국적이 바뀌는 마법이라니, ‘호그와트 레거시’가 따로 없네요.
페인트칠에서 시작된 단어? 화이트워싱의 유래
‘화이트워싱’이라는 단어는 사실 꽤 오래전부터 사용되었습니다.
원래의 뜻은 석회나 백토를 물에 섞어 만든 흰색 페인트, 즉 ‘회반죽(whitewash)’을 칠하는 행위 그 자체를 의미했어요.
그러다 19세기 미국에서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을 통해 ‘결점이나 잘못을 숨기려는 기만적인 행위’라는 비유적인 의미를 얻게 됩니다.

이후 이 단어가 미디어 산업으로 넘어오면서, 원작의 인종 설정을 ‘의도적으로’ 지우고 백인으로 바꾸는 행태를 비판하는 용어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결점을 덮으려던 페인트칠이, 이제는 문화적 정체성을 덮어버린다는 의미로 확장된 셈이죠.
논란의 중심! 화이트워싱 대표 사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직접적인 사례를 보면 이해가 훨씬 빠르실 겁니다.
어떤 작품들이 화이트워싱 논란의 중심에 섰을까요?
-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2017)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이 원작으로,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은 당연히 일본인입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을 맡아 제작 단계부터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죠. 원작 팬들은 물론이고 많은 비평가들이 ‘아시아 배우들의 자리를 빼앗는 행위’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2016)마블 코믹스 원작에서 ‘에인션트 원’은 티베트 출신의 남성 마법사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백인 여성인 틸다 스윈튼이 이 역할을 연기했습니다. 제작진은 ‘티베트인이라는 설정이 중국을 자극할 수 있어 피했다’고 해명했지만, ‘그렇다면 다른 아시아 배우를 캐스팅하면 되지 않았는가’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 영화 <라스트 에어벤더> (2010)동양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누이트,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원작입니다. 하지만 영화판에서는 주요 선역 캐릭터 대부분을 백인 배우들이 연기했고, 유일하게 악역 캐릭터만 유색인종 배우를 캐스팅해 더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는… 영화의 흥행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죠.

그래서, 화이트워싱이 왜 문제인가요?
“그냥 영화는 영화로 보면 안 되나?”, “연기만 잘하면 됐지, 인종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타당한 의문입니다.
하지만 화이트워싱이 계속해서 비판받는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 문화적 정체성의 삭제
특정 문화권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정작 그 문화권의 배우를 배제하는 것은 이야기의 뿌리를 지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해당 문화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며, 원작이 가진 고유한 매력과 깊이를 얕게 만듭니다. - 소수 인종 배우들의 기회 박탈
할리우드를 비롯한 주류 미디어 시장에서 유색인종 배우들이 설 자리는 여전히 좁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 주어지는 유색인종 캐릭터 역할마저 백인 배우에게 돌아가는 것은, 이들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불공정한 처사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 편견과 고정관념의 강화
‘주인공은 백인이어야 성공한다’는 무의식적인 편견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이 스크린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세상의 다양성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단순한 캐스팅을 넘어, ‘존중’의 문제
화이트워싱은 단순히 어떤 배우를 캐스팅하는가의 문제를 넘어, 다른 문화와 인종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에 대한 ‘존중’의 문제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인어공주’의 할리 베일리처럼 흑인 배우가 백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블랙워싱’ 또는 ‘레이스벤딩(Racebending)’에 대한 논의도 활발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 소수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해석을 통해 원작을 풍부하게 만든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반면 화이트워싱은 이미 주류인 백인 중심의 시각을 더욱 강화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우리가 스크린에서 보는 이야기는 현실 세계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그 거울이 한 가지 색깔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다채로운 색깔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을 때 더 풍부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